잠과 꿈과의 관계 그리고 꿈의 길이 (2)

잠과 꿈과의 관계

「사람이 왜 꿈을 꾸는가?」 하는 생리학적 원인은 잠을 자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직까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호흡중추나 체온조절중추 등이 있는 교(橋)와 연수 부근에서 일어난 전기적 흥분이 대뇌피질에 전달되는 과정에 기억창고인 해마를 자극하게 됨으로써 꿈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구체적 실증으로 증명되지 않은 하나의 추정에 머물고 있다.

정신분석학자들도 잠과 꿈의 관계를 설명함에 있어 「꿈이란 깨어 있을 때의 정신 활동의 나머지로서 잠을 방해하려는 자극에 대한 반응」이라고 정의한 바 있으나, 이것 역시 어디까지나 생리학적 측면의 단편적인 추론에 불과한 것이었다.

 

뇌파측정기로 수면상태를 연구해 온 학자들이 성인의 뇌파를 측정 • 분류한 데 따르면 깨어 있으면서 눈을 감고 있을 때 10Hz 전후의 알파(a)파가 보이다가, 졸음이 오게 되면 알파파는 없어지고 진폭이 작은 4~6Hz의 서파(徐波)가 나타나며, 이어서 방추파라고 하는 14Hz 정도의 빠른 파가 나타난다고 한다. 더욱 나아가면 방추파 외에 진폭이 큰 3Hz 정도의 서파가 나타나다가, 완전히 잠에 빠져들면 방추파가 감소하여 거의 서파만으로 유지된다고 한다.

이상에서 보듯이 뇌파는 수면이 깊어짐에 따라 그 주파수가 느려지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를 서 파수면 또는 오르토수면이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각성기의 뇌파에 가까운 빠른 형태를 보이면서도 감각 자극으로는 각성되기 어렵고, 신체의 긴장도 상당히 감소되어 있어 행동 면에서 볼 때 상당히 깊은 수면이라고 생각되는 시기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이것을 파라기라 하는데, 연구에 참여한 학자들은 이 시기에 머리와 몸의 활동이 완전하게 분리된 상태가 된다고 주장한다. 즉, 몸은 자고 있어도 머리는 각성기처럼 활동한다는 것이다. 각국에서 거의 동시에 발견된 이 파라수면은 뇌파상과 수면심도와의 관계가 지금까지의 상식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설수면이라 불리었다.

이후 명칭상의 통일이 필요해진 학자들은 REM(rapid eye movement: 급속안구운동) 수면이라고 명명하였는데, 유독 이 시기에만 안구운동이 나타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오랫동안 ‘수면의 어느 단계에서 꿈이 꾸어지는가?’ 하는 연구에 매달려 고심하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발견을 계기로 안구운동이 시작되는REM기에만 꿈을 꾸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즉, 뇌파측정으로 구분한 잠의 심도 A • B • C • D • E의 5단계 중 오직 B단계(RAM기)에서 꿈을 꾼다는 학설이 우세를 점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정의에 따르면 A는 졸음이 오는 단계이고, C는 중간 단계이며, D • E는 깊은 잠에 빠져 꿈을 꾸지 않는 단계다.

그렇다면 얕은 잠에서 깊은 잠으로의 반복이 하룻밤 사이에도 4~5 회 정도(90분을 한 주기로)나 계속된다는 것이니 꿈도 4~5회를 꾼다는 결과가 도출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체험과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하는 과정에서 이것은 참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에 빠지자마자 곧바로 꿈을 꾸는 것으로 밝혀졌고, 최면몽이나 환각몽의 표현수단이 수면몽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밝혀낸 나로서는 깊은 잠에 빠져들지 않는 한 언제든 꿈올 꾼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꿈의 형성모태인 잠재의식이 활성화되는 반수상태 (말 그대로 반쯤잠든 상태)에 이르면 언제든지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다. 만약 REM기에만 꿈을 꾼다는 사실을 인정할 경우, ‘질식된 관념의 분비’ 이론이나 수면 중의 ‘기군형성원 리’ 등은 설자리를 잃게 된다. 또한 잠꼬대나 가위눌림 등은 역설적 수면이 아닌 서파수면의 10분 전후에 더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나는 위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심수면기의 한두 시간을 제외한 잠의 전 과정에서 꿈이 형성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만 잠을 잘 때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은 뇌간의 자율신경운동 반응이라는 학설이 유력한 이상, 꿈이 신체적 반응을 일으켜 눈동자가 움직인다는 주장을 어느 정도는 수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각적 운동을 수반하지 않는 꿈, 즉 상념 • 언어 • 정동 등의 표상으로만 이루어진 꿈도 꿀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반수상태에 몰입하기만 하면 언제든 꿈이 형성된다는 나의 주장이 보다 큰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각성시의 최면상태나 환각상태, 그리고 잠이 들기 시작할 무렵이나, 잠을 깨기 직전과 같은 상태만이 아니 라 수면심도의 변환주기 (서파수면에서 심수면으로, 다음 심수면에서 역설수면으로 이어지는 90분간의 주기를 말함) 중에서 꿈을 기억 할 수 없는 심수면기를 제외한 모든 수면상태를 반수상태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깊은 잠에 빠졌을 때에만 꿈을 꾼다는 정반대의 생각을 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의 체험적 증거들은 잠들자마자 또는 입면초기상태에도 꿈을 꾼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입증하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환각몽으로서 비몽사몽이라고도 한다.

꿈의 길이

우리는 잠을 깨고 나서 기억되는 내용이 간밤에 꾼 꿈의 전부라고 생각하거나, 객관적 측정에 의한 안구운동 기간만을 꿈으로 인정하거나, 또는 밤새 한 가지 꿈만 꾸었다고 생각하거나 하는 등의 오류에 빠지기 쉽다.

우리는 하룻밤에도 여러 가지 꿈을 꿀 수 있는데 그 대부분은 망각되기 쉽고, 설사 잘 기억된다 해도 그 중 한 가지, 그것도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꿈은 시각상 뿐 아니라 언어 • 상념 • 행동 • 정동 등 여러 가지 상징표상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그러 한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따라서 사람들이 기억해내는 꿈이나 각종 문헌에 기록된 꿈의 대부분도 기실 따지고 보면 그 단편적 내용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꿈속에서 ‘한 장의 그림엽서를 보았다’ 라는 매우 단순해 보이는 내용에도 기록을 하다 보면 의외로 많은 사연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출처와 처리, 그 것을 보는 동안 일어난 일, 또 그것을 보고 느끼는 심적 동인까지도 모두 포함되어 하나의 꿈이 완성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꿈이 일반적으로 긴 사연을 말해 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생각 외로 짧게 끝나는 경우도 많다. 잠재사상에 연유하였거나 잠재사상을 환기시키는 어떤 꿈의 재료를 이끌어내 예지나 판단이 이루어질 경우에는 단지 그것만으로 꿈이 종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꿈속에서의 시간감과 현실에서의 시간감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현실보다 짧은시간 내에 길다고 느껴지는 꿈을 꿀 수도 있으며, 현실적 시간감각과 동일한 흐름으로 진행되는 꿈을 꿀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짧은 시간 속에서 길게 느껴지는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은 각성시 순간적으로 많은 기억들을 잇달아 회상하거나 책이나 영화의 내용을 되살릴 때 수많은 영상들이 압축되어 상기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와 관련하여 프로이트는 그의 《꿈의 해석》에 실린 모우리의 꿈 이야기를 예로 들어 설명한 바 있다.

모우리는 그가 막 잠이 드는 순간 침대의 판자가 떨어져 목의 척추를 때린 것이 긴 광장을 지나 단두대에 오르고 목을 늘여 칼을 받는 긴 꿈을 형성하였다고 진술한 바 있다.

 

프로이트는 이 모우리의 주장에 대하여 일면 수긍하면서도 긴 꿈의 사연에 견주어 현실 사건은 순간적이었다는 점을 들어 사건과 시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견해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꿈은 결코 압축되지 않았다. 이 꿈은 모우리의 감각자극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판자가 떨어져 자기 목의 척추를 때리리라는 예감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모우리의 병이 나을 것이라는 자기 암시가 확고한 의도로서 표현된 것이다.

이 꿈에서 외부의 감각자극과 꿈의 표현이 동시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꿈의 끝 부분, 즉 판자가 뒤집혀 떨어지는 순간 꿈속에서 칼이 떨어지고 자신의 목이 잘려 놀라 깨는 정도였을 것이다.

감각자극으로 형성되어 신체운동을 수반하는 꿈들이 현실과 동시성을 갖는다는 주장을 입증할 명백한 증거가 있다. 즉 사람들이 꿈 속의 행동대로 수족을 움직이고 잠꼬대를 하게 될 때, 꿈과 현실의 시간 경과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loading